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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아리
날짜 : 2022.07.21
박순애, 기록, 집(#박순애_기록_집)의 저자이며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인 김혜미도 #성북아리 에 (비밀리에) 특별기고 했습니다.(우와~) 발달장애인 운동의 조력자로서, 함께 길을 걷는 마음.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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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보인다
김혜미(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한 번은 조작간첩으로 몰렸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한 선생님 댁에 방문하게 됐다. 그때 선생님은 “내가 아마 그 일(조작간첩으로 몰렸던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내가 자네들을 만나는 이런 일도 없었겠지.”
나는 이 말을 듣고 놀랐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조작간첩으로 몰렸던 일을 긍정하는 건가? 또 겪어도 된다는 뜻인가? 돌이켜 보건대, 그가 겪어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 엄마와의 갈등을 견딜 수 없어 살기 위해 뛰쳐나왔다. 집을 나오고 나는 집에서 일어난 일을 해석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인정해야 했는데, 그것은 나는 엄마로부터 ‘나왔다’는 것이었다. 쉽지 않았다. ‘엄마’라는 존재를 내 삶에서 뺄 수도 더할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나는 엄마의 집에서 나왔다. 나에게는 해방이었지만 엄마에게 이 사실은 고통이었다.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 내 인생의 최대 과제이다.
그래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많은 부분이 부모를 ‘배반’하거나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원하는 ‘착한’ 방식대로 ‘좋은’ 방식대로 당사자 운동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원하는 대로 독립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미쳐버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트릴 수 없다’
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운동의 조력자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건 돈이 필요해서였다. 누군가 페이스북에 발달장애인의 근로지원인을 구한다는 공고를 올렸고, 그것을 본 친구가 내게 ‘이곳에서 일하면 어떠냐’고 말했다. 그 당시 돈이 점점 바닥을 보였기에, 그 일이 뭔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센터 실무자로 일을 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나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를 꽤 자주 마주쳤다. 발달장애인의 (법제화된) 권리가 그들의 부모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모들은발달장애인의 해방을 위해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농성장을 세웠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말을 얹기가 두려웠다. 어머니가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을 했을 때, ‘우리의 목숨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발달장애인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원하는 사람과 같이 또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누군가는 당연한 말을 하는 것인데 무엇이 무섭냐고 하겠지만, 사실 이 말들은 모두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배반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당연히 너의 독립을 응원한다고 하지만 발달장애인 자녀와 부모를 동일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이 발화는쉽지 않다.
지금은 ‘이 운동을 하다 보면 나도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하고 있다. 우선, 나는 발달장애인이 아니며 적어도 나의 친인척 중에는 (발달)장애인이 없다. 이것은 내가 당사자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을 조력자로서 함께 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지금은 결론을 내리는 중이다. 나는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내가 가졌던 부모와의 갈등을 해석하고 내가 부모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정확히는 부모운동은 발달장애인의 해방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가족의 해방을 위한 것이다. 무연고인, 시설에 사는 발달장애인은 어떠한가. 부모운동이 이들에게도 해방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탈시설 운동이 해방의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당사자 부모들의 말에서 나의 엄마가 가졌을 마음을 본다. 나는 비장애인 자식이므로 내 엄마의 고통은 당사자 부모들의 마음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종종 그들이 말하는 것에서 누군가를 기른다는 것의 고통과 기쁨 그리고 환희, 절망 같은 것들을 읽는다. 그 모습들은 나에게 어떤 위안과 이해를준다. 저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것들. 그럴 때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또, 내가 겪었던 부모와의 갈등과 분노는 당사자들의 말을 이해하고 당사자 운동에서 조력자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가령 '어떤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일의 고통' 같은 것들이다. 분명 당사자 운동은 독립 혹은 자립을 외치고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 내가 먹고 자고 살았던 시설에서의 독립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안다. 탈시설 당사자가 '시설은 폐쇄되어야 할 곳'이라고 외치지만, 그 안의 직원들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일종의 잘못된 '사랑' 같은 것들을 동시에느끼고 있음을안다. '시설은 감옥이다'를 외칠 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망설임 같은 것들. 그래서 같은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한다. 내가 만났던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만약 이 고통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당사자 운동을 지금까지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에서 당사자들의 마음을 추론하고 추측하고 물어본다.
‘해방이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방’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대해서 마음에 닿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안다. 해방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이라는 것. 발달장애인 당사자 운동인 피플퍼스트의 구호처럼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사람으로 불리기 원한다’는 것.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부르지, 사람으로 불리는 게 무슨 말이지? 장애를 부정하는 건가?’ 나는 그들의 장애와 이름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하지만 장애인을 사람으로 부르는 것, 정확히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장애 자부심’과 모순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처음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근로지원인을 하며 퇴근 후 한 일은 ‘발달장애’와 관련된 의학 서적을 찾아보는 일이었다. 도저히 알 길이 없는 당사자를 이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지낼수록 ‘장애’가 아니라 발달장애‘인’ 그러니까 발달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눈에 보였다. 이제는 또 다르다. 이름이 보인다.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사람이 가진 어려움이나 힘듦을 정체성에서만 찾지 않는 것. 그리고 나중에는 결국 '그래, 그것은 당신이라는 총체적인 사람에서 비롯하는 것이었구나' 하고 말하는 것. 그것이 이름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해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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