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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2
날짜 : 2022.07.13
첨부파일 : 서울 시청기자회견.jpg (535.43 KB)
예전에 어떤 논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장애인은 그 존재만으로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했다. 나쁜 뜻이 아니라 그 존재가 사회의 경계를 흔든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절실하게 동의했으나 지금은 절실하게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회는 장애인을, 특히 발달장애인을 ‘위협적’이라고 보지 않고 ‘위험’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주 예전에 우리끼리 연 기자회견이 있었다. 선관위 앞이었는데,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에 선관위 직원들이 팔짱을 끼고 우리를 보며 웃었다. 박수도 치고. 나는 당사자의 존재가 ‘위험’일 뿐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에 너무나 절망했고, 그 날 돌아오는 길에 어떤 패배감 같은 것을 느꼈다.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춤과 노래로 요구를 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면 우리가 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그 날 하루종일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무기가 도대체 무엇일지 늘 생각했다.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사회를 위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체장애인의 운동에 묻히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을까. 지금 내 스스로에게 지어지는 결론을 생각해보자면, 최대의 무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언어 뿐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 장애인 운동의 언어는 많은 부분을 신체장애인의 경험에 빚지고 있으므로 발달장애인의 말은 사실 신체장애인의 경험을 경유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의 말은 처음에는 ‘감정 투성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이 아니기 때문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동료 당사자들과 기자회견, 집회 발언문을 써야 할 때가 많았다. 그 때 우리가 한 이야기는 사실, 어떤 ‘감정’에 관한 것이었다. ‘화가 난다’ ,‘슬프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이야기. 누군가는 감정이 이성의 반응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그 때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정말 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서, 이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됐다. 나는 그 때 몹시 답답했다. 늘 발달장애인의 언어가 절실하다고 느꼈고, 그 말들을 어떻게 캐내야 할지 몰라 동동거렸다. 언어라는 것은 시간이 흘렀을 때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각한 것들을 순간적으로 캐낼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말은 언제 생기는걸까. 어떻게 생기는걸까. 경험은 저절로 활동의 언어가 될 수 없음을 느끼는 순간들만 계속 될 뿐이었다.
전환을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중간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것이 조금은 가능한데, 첫 번째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람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달라서 언어의 한계가 있었던 것인데 그 한계가 오히려 언어를 만들어 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내가 알고 있던, 시설에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보면 신체장애인의 이야기가 많았다. 그 이야기 속에서 발달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미세한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를 동료들과 포착하고 끈질기게 파고들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이야기 시간에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하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해당 의제나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왜 그렇게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웃기게도 ‘감정’을 말하며 쌓은 시간들과 이야기가 ‘왜’라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왜’ 라는 질문은 어렵다. 이 질문에 쉽게 대답이 가능했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보다 더 빠르게 우리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다른 사람의 경험과 차이를 인식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자리는 주어지지 않으므로 계속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갔다. 회의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 하고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듣게 만들고 우리의 말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계속 붙잡고 말을 하고 또 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은 당사자들만으로만 이뤄진 기자회견을 했다. 발달장애인들이 연대발언이나 ‘경험만’을 말하는 사람이 아닌, '불려 나가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 직접 서서 자신의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길지는 않았다. 고작 1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운동을 처음 조력한 그 때의 나는 사실, 이 순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오늘 서울시 관계자들은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면담요청에 응했고 발달장애인 센터장과 조력자들이 함께 면담에 들어갔다. 이 시간이 너무나 통쾌해서 죽을 뻔 했다.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경계에 늘 포섭되거나 아니면 경계 사이에 짓눌려 사라지는 것. 그러므로 경계에서 있기 위해서는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존재만으로는 결코 위협적일 수는 없다. 그 위협의 조건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래도 언어다. 경험의 말하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활동의 언어로 바꾸는 것. 발달장애인에게 가장 약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언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강점이고 위협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위험을 넘어서는 위협의 언어, 우리만의 더 길고 더 멋진 이야기가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날들이 오늘의 기자회견처럼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발달장애인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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