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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박경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날짜 : 2022.05.16
안녕하세요? 저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하는 박경인입니다.
오늘 저는 왜 탈시설이 필요한지 당사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시설의 삶
 
저는 태어나자마자 부산의 한 미혼모시설에 맡겨졌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있는 비장애인 시설에 옮겨졌습니다.
그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해 노원구에 있는 장애인 시설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그곳에서는 복지사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다른 기관에 있는 그룹홈으로 혼자 옮겨졌습니다.

그곳은 아동 그룹홈 중에서도 좋은 곳이라고 이름난 곳이었어요.
선생님들이 일부러 저를 추천해서 보내주신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많은 학대를 당했습니다.
엎드려뻗쳐를 시켜서 엉덩이도 때리고 얼굴도 때리고 엄청 많이 맞았습니다.
어떤 아이한테는 정신 차리라고 얼굴에 물을 뿌리기도 했어요.
그 일로 그 아이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 일이 나한테는 큰 상처였던 것 같아요. 많이 우울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23살에 자립하기까지 10년 정도를 그룹홈에서 살았습니다.
살던 곳을 옮길 때마다 제 동의를 구한 적은 없습니다.

그룹홈은 일반 빌라의 한 층을 썼습니다.
방 3개에 화장실은 하나에서 두 개 정도. 방 하나는 선생님이 쓰시고 나머지 방 두 개에 우리들이 살았습니다.
보통 5~6명, 많게는 7명이 살았습니다.
잠깐씩만 살다가 가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선생님도 여러 번 바뀌었어요.
선생님들이 자꾸 바뀌니까 불안했어요.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슬펐습니다.
같이 살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또 갑자기 사라지고….
그게 너무 싫었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해야 하는 게 지치고 지겨웠습니다.
숨이 막혔어요.

그룹홈 이름이 적힌 간판이 현관문에 붙어 있었는데, 이웃 주민들 눈치도 보였어요.
그 문은 밖에서 잠그면 안에서 못 열게 해놨어요.
선생님이 열어줘야지 나갈 수 있었어요.
그룹홈에 있을 때는 정해진 대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자야 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밥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었어요.

방도 좁았어요.
그리고 뭘 그렇게 고칠 게 많은지 공사하고 공사하고 또 공사하고.
공사 좀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선생님도 없이 아이들끼리만 자고 있는데 갑자기 공사하는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라서 일어난 적도 있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시설에 살 때 저는 아끼는 옷이 없었어요.
부산에서 서울로 올 때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왔어요.
어릴 때는 수녀님들 손에서 컸거든요.
수녀님들은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옷은 교복 하나 체육복
하나면 끝이라고 생각하셨어요. 팬티도 다 돌아가면서 입는 거예요.
그리고 시설에서는 사람들 옷을 한꺼번에 세탁기에 돌려요.
그러니까 옷이 금방 낡고 상해버려요.
옷도 잘 잃어버려요.
그러니까 시설에서는 내 옷이 네 옷이고 네 옷이 내 옷이었거든요.

필요한 옷은 선생님과 마트에 같이 가서 사 입었는데,
뭘 샀는지 다 사진을 찍었어요.
허락 안 받으면 살 수 없었어요.
돈을 쓰면 돈을 썼다고 확인하는 싸인을 해야 돼요.

스무살이 넘어서는 10만 원씩 용돈을 받아서 썼는데,
용돈기입장에 돈 쓴 내역을 일일이 쓰고 검사 받아야 했어요.
그 돈을 아껴서 후원자들한테 보낼 선물을 사라고 했어요.
20살 되기 전에는 용돈이 없었어요.
급할 때만 조금씩 받아서 썼는데, 저는 먼저 돈 달라고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의 기도
 
아주 옛날부터 저는 “내 방 생기게 해주세요,
내 방 생기게 해주세요” 기도했어요.
“남들과 똑같이 살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소원도 빌었고.
근데 그게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23살에 자립했는데,
제가 소규모 그룹홈에 살고 있어서 자립정착금은 받을 수 없었어요.
월급과 수급비를 열심히 모아서 나왔어요.
LH대출을 받아서 집을 힘들게 구했고 살림살이를 샀습니다.
내 방이 생겼다는 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처음 돈 벌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때 2학기 때인데,
바리스타 일해서 첫 월급 탄 거는 선생님이 바로 가져가셨어요.
돈관리를 선생님이 하셨거든요.
자립하고 처음으로 내가 돈관리를 해보게 됐어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막 썼어요.
냉장고도 사고 청소기도 사고 집에 필요한 것들 사느라 돈을 다 썼어요.
내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룹홈에서는 늘 딱지 붙은 물건만 썼거든요.
내 물건이 아니라 그룹홈의 물건들이었어요.
깨끗하게 써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옷도 옷장도 다 정리해야 되고 늘 확인 받아야 되고.
자립해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좋았어요.



자립하고 나서 조금 안 좋은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 때문에 삶이 좀 힘들어졌어요.
처음에는 무조건 사람을 많이 만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실컷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만날수록 돈도 잃고 시간도 잃고 제 일상생활을 못 하게 되더라고요.
갑자기 많은 관계들이 생겨나서 우왕좌왕했어요.

마음이 많이 힘들어져서 1년 반 정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가 의사 선생님의 치료도 다 거부한 적도 있었거든요.
근데 어떤 선생님이 제게 좋은 말을 해주셨어요.
관계는 이렇게 맺는 거 아니라고.
사람 관계는 천천히 다가가는 거라고.
이제는 내가 만나야 할 사람과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자립하고 제가 변한 게 있다면,
사람들 시선을 잘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봤어요.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나를 이용하면 어떡할까.
이 사람이 지금은 나와 함께 있지만 또 떠나겠지.
이런 생각이 많았어요.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고, 그리고 피플퍼스트 센터에서 활동하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냥 친한 사람들이 생겨서만은 아니에요.
내가 성장한다는 게 좋아요.
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세상을 하나하나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생’을 배우는 것 같아요.
시설 안에 있으면 전혀 배울 수 없는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나를 다그치고 혼내지 않아도 잘 알려줘요.
저한테 직접 뭘 안 가르쳐줘도 아주 중요한 걸 알려주는 것 같아요.
세상에는 나를 걱정해주고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걸 알게 돼서 좋아요.

시설에 있을 때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안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다 있었지만
그건 무조건 주어진 관계였어요.
나는 시설 안에서 살아야만 되고,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에요.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랑 같이 사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언젠가 내가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엄청 운 날이 있었어요.
근데 같이 사는 사람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지나가요.
“너 왜 그래?” 그런 말도 해준 적이 없어요.
 
왜 우리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나요?
 
어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들한테는
시설이 제일 좋은 곳 아니냐고 말해요.
제 생각은 달라요. 시설이 더 위험해요.

시설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같이 사는데
같은 장애인들이 우리를 학대할 때도 있어요.
제가 시설에 있을 때 한 언니가 저를 되게 힘들게 했어요.
제 얼굴을 꼬집고 때렸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시설 안에서는 같이 사는 장애인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요.
폭력을 쓰거나 말로 상처 주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 말을 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설 안에서는 싫다고 안 만날 수 없잖아요.

그리고 선생님들이 어떤 애 하나 때문에
단체로 야단을 치고 벌을 줄 때가 있어요.
나는 조용히 잘 있었는데 괜히 혼나니까 너무 싫었어요.
사고는 다 다른 애들이 치고 그걸 수습하느라
내가 너무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또 시설 안에는 규칙들이 많이 있는데,
누가 문제행동을 하면 그 규칙들이 세지고 또 새로 만들어져요.
자꾸 통제만 하려다 보면 선생님도 지쳐서 나가버려요.

또 시설에서는 부모님이나 가족이 있는 애들을
더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있던 그룹홈은 연고자가 없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그중에 오빠가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어요.
오빠가 찾아올 때마다 대청소를 싹 해야 했어요.
오빠가 맛있는 거 가끔 사 오거든요.
선생님들은 그 친구한테 잘하라고,
그 친구 덕에 좋은 거 먹는다고 말했어요.
그 사람은 “나 오빠 있어” 맨날 자랑하고.
우리가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오빠한테 전화하고,
그러면 우리는 무조건 혼나고 그랬어요.
크고 작은 차별이 곳곳에 있었어요.

시설을 나와서 사니까 행복합니다.
물론 나와서 힘든 일도 있었는데
그 힘든 일을 잘 이겨내니까 너무 좋아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성장하잖아요.
발달장애인도 실수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은 다 저래.’ 비장애인들은 쉽게 이렇게 말해요.
그런데 발달장애인다운 특성은 없는 것 같아요.
발달장애인도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사람마다 눈 코 입 생긴 모양이 다르듯이.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 합의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발달장애인이 실수할 기회를 막아버리면 성장할 힘이 없어져요.
제가 겪어보니까 더 잘 알겠어요.

지금도 여전히 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그 친구들을 만날 때 ‘우리 같이 자립하자’고 이야기해줬어요.
그 친구들도 자립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허락을 안 해준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합니다.
저도 탈시설을 하면서 그룹홈 선생님에게
다른 애들 바람 넣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우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나요?
왜 사회는 우리 발달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겁니까?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한 공청회에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탈시설할 때 누구의 도움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나 홀로 모든 것을 준비해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생을 하지 않고도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탈시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꾸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5월 11일, 박경인 탈시설 국회 토론회에서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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